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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vs 東方禮義之國)

by 도파공 2009.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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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를 잘 지키는 동쪽의 나라라는 말로, 중국에서 한국을 일컫던 말이다. * 동방예의지국 (東方禮之國)이란 표현은 공자(孔子)의 7대손 공빈(孔斌)이 고대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서 쓴 '동이열전'(東夷列傳)에 등장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먼 옛날부터 동쪽에 나라가 있는데 이를 동이(東夷)라 한다. 그 나라에 단군(檀君)이라는 훌륭한 사람이 태어나니 아홉 개 부족 구이(九夷)가 그를 받들어 임금으로 뫼셨다. 일찍이 그 나라에 자부선인(紫府仙人)이라는 도에 통한 학자가 있었는데, 중국의 황제(黃帝; 중국인의 시조)가 글을 배우고 내황문(內皇文)을 받아 가지고 돌아와 염제(炎帝) 대신 임금이 되어 백성들에게 생활방법을 가르쳤다. 순(舜)이 중국에 와서 요(堯)임금의 다음 임금이 되어 백성들에게 사람 노릇하는 윤리와 도덕을 처음으로 가르쳤다. 소련(小連)과 대련(大連) 형제가 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더니 부모가 돌아가시니까 3년을 슬퍼했는데 이들은 한 민족의 아들 동이족의 후예였다. 其國雖大 不自驕矜 其兵雖强 不侵入國 風俗淳厚 行者讓路 食者推飯 男女異處 而不同席 可謂東方禮儀之君子國也 그 나라는 크지만 교만하지 않고 그 병사는 강하나 침략하지 않는다. 풍속이 순후하여 길가는 사람은 길을 양보하고 먹는 자는 밥을 미루고 남녀는 따로 거처하니 가히 동방 禮儀의 군자국이라 하겠다. 이런 까닭으로 나의 할아버지 공자(孔子)께서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시면서 ‘누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 동방예의지국 (東方禮之國)

예의(禮義)는 예절과 의리를 뜻하는데 외교상으로는 황제국이 조공국에게 사용하며 조공국이 황제국에 의리를 잘 지키고 있다는 치하의 뜻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세조인 수양대군이 왕이 되기 위하여 단종을 몰아내기 전 명나라에 양녕대군을 사신으로 보냈을 때, 당시 명나라는 영종(英宗) 주기진(朱祁鎭)이 1449년(세종 31년) 8월 몽골군과 전쟁에 나섰다가 현재의 허베이(河北)성 화이라이(懷來)현 부근의 토목보(土木堡)에서 대패했다. 대군은 궤멸되고 영종은 생포되는 ‘토목의 변(土木之變)’을 당하여 주변 국가들이 명나라를 낮춰보던 때였다. 양녕대군은 명나라 대종(代宗)이 예부 낭중(郎中)을 시켜 표리(表裏:겉옷과 속옷)를 하사하자 “황제께서 내리시는 것이니 의리로 보아 앉아서 받을 수 없다”며 일어나서 받았다. 예부 낭중 웅장(熊壯)이 놀라 일어나면서 “조선은 본디 예의의 나라지만 예의를 아는 것이 이와 같다”고 감탄했다고 노산군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新校本宋史 列傳 卷四百八十七 신교본 송사 열전 권487 惟王久慕華風,素懷明略,效忠純之節,撫禮義之邦。 (고려)왕은 오래도록 중화의 풍속을 사모하여 평소 현명한 책략을 품고 충순(忠純)의 절개에 힘쓰며 禮義의 나라를 돌본다. 清史稿 列傳 卷五百二十六 청사고 열전 권526 朝鮮國王奉事我朝 小心敬慎 其國聞有八道 北道接瓦爾喀地方土門江 東道接倭子國 西道接我鳳凰城 南道接海外 尚有數小島 太宗平定朝鮮 國人樹碑於駐軍之地 頌德至今 當明之末年 彼始終服事 未嘗叛離 實屬重禮義之邦 尤為可取 조선국왕은 우리 조정(청나라)을 받들어 섬기는데 조심하고 공경하며 근신한다. 그 나라에는 팔도(八道)가 있는데, 북도(北道)는 와이객(瓦爾喀) 지방의 토문강(土門江)과 접하고 동도(東道)는 왜자국(倭子國)과 접하며 서도(西道)는 우리의 봉황성(鳳凰城)과 접하고 남도(南道)는 해외(海外)와 접하며 몇 개의 작은 섬이 있다고 한다. 태종께서 조선을 평정하자 국인(國人)이 주군지(駐軍地)에 비(碑)를 세우고는 오늘날까지 덕을 기리고 있다. 명나라의 말년에 이르러서도 그들은 시종 (명나라를) 섬기며 복종하여 일찍이 배반한 적이 없으니 실로 禮義를 중시하는 나라에 속하므로 더욱 취할 만하다.

출처 : 위키백과 - http://ko.wikipedia.org/wiki/%EB%8F%99%EB%B0%A9%EC%98%88%EC%9D%98%EC%A7%80%EA%B5%AD#cite_not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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