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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따뜻한 글

짚신의 교훈

by 도파공 2010.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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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식당에서 식사하기 자리를 앉다 보면 식탁위가 지저분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식사 후 자리를 떠날 때..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떠나죠.. 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화원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후.. 제가 바뀌게 된 것 같네요. 위의 얘기는 제가 생활하면서 바뀐 것 중에 하나이지요.여기에 화원 선생님의 자서전에서 발췌한 글을 옮겨 봅니다.

 

 

 

짚신의 교훈 - 화원 선생님의 [인생의 길, 나의 길] 중에서....

 

  짚신의 교훈은 아마도 내 평생 가장 많이 인용한 이야기일 게다. 내가 여섯 살 무렵 하루는 할머니와 같이 와출을 하게 되었다. 내가 걸으며 뛰며 앞서가고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으며 뒤에 따라오셨다. 할머니는 50대 중반이셨으나 흰머리가 돋기 시작한 그 당시로는 영락없는 할머니였다.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 70~80세 된 할머니라도 건강관리를 잘 하신 분들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춤도 추고 등산을 다니기도 하지만 그 시절에는 일반적으로 50살만 넘으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불렀고, 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어 갔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식생활의 개선, 의료기술의 발달, 환경개선 등으로 수명이 엄청나게 연장된 세상이다.
  한참을 말없이 걷다가 할머니가 뒤에서 나의 옆구리를 지팡이로 쿡 찌르며 "득중아!"하고 부르셨다. "예! 왜 부르셨어요?"라며 돌아봤더니 아무 말씀도 없이 지팡이가 돌아갔다. 돌아가는 지팡이 끝을 바라보고 있는데 지팡이가 멎었다. 지팡이 끝이 가르친 곳 도랑에 짚신 한 켤레가 뒤집혀져 있었다. "저것 재껴 놔라." 하시길레 "왜요?"하고 반문하였더니, "할미가 시키면 하는거야."하셨다.
  요즘 아이들에게 아무 이유나 설명이 없이 "할미가 시키면 하는 거야."라고 하면 수긍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때는 어른이 시킨다거나 할머니가 시키는 말씀이라면 그야말로 지상명령으로 통하던 때였다. 나는 시골길옆 도랑 바닥으로 기어서 내려가 모래톱에 반쯤 묻힌 짚신을 꺼냈다. 모래가 많이 묻어 있었으나 개울물이 많지 않아 손으로 모래톱을 파니 금방 물이 가득 고였다. 물이 고이자 짚신 두 짝을 물에 흔들어 모래를 털어내니 바닥이 조금 떨어지기는 했어도 제법 깨끗한 짚신이 되었다.
  모래톱에 나란히 짚신 한 켤레를 놓고 할머니를 쳐다보니 흡족하셨던지 고개를 끄덕이며 지팡이를 내가 있는 쪽으로 내밀어 그 지팡이 끝을 잡고 도랑을 걸어나와 다시 가던 길로 몇 발자국 걸어가는데, 할머니가 또 "득중아!"하고 부르시는 것이었다. "예! 왜 또 그러세요?"라고 하였더니, "너 할미가 하는 말이라고 허튼소리로 듣지 마라. 할미가 왜 짚신을 재껴 놓으라고 했는지 아느냐?"하시는 것 아닌가? 얼른 생각해도 모를 일이어서 "몰라요. 할머니가 시키셨잖아요ㅗ? 어른이 시키면 해야 되잖아요?" 그렇게 퉁명스레 되물었다. 어린 시절에도 똘똘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련님 호칭을 들으며 자랐기에 어른들이 묻는 말에 초롱초롱하게 대답하곤 하였다.
  그러자 할머니는 길거리에 서서 정겹게 나를 바라보시며 "저 짚신을 두고 네가 지나치면 뒤에 따라오는 사람은 네가 뒤집어 놓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네가 지나간 자리에는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도록 해야 한다. 사람이 지나간 뒤에 잘못된 것이 그대로 있으면 안되는 거야. 비단 저 짚신뿜만 아니야. 앞으로도 네가 지나간 자리에 잘못된 것이 그대로 있으면 안되는 거야 그것을 일러주고 싶어서 그랬단다."라고 사뭇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사실 그 때는 어린 나이였기에 그저 할머니 말씀이라 고개를 끄떡이며 넘겼지만 그 깊은 의미를 터득한 것은 청년이 된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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